37억 건물 기부했더니 세금 독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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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이야기

37억 건물 기부했더니 세금 독촉장

by K 61417 2021. 9. 18.

 

15일 부산에서 직접 만난 이병규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 회장. /최정석 기자

20년을 봉사에 몸 바쳤다. 사단법인 만들어서 부산시청에 넘기고 건물까지 기부했다.
선의로 기부한 건데 이런 식으로 국가가 세금을 매기면 누가 또 기부를 하겠냐.

부산 사하구에서 20년째 복지회관을 운영 중인 이병규(60) 두리하나희망찾기복지회 회장은

지난해 10월쯤 두 장의 공문서를 받아들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각각 1700만원(지방소득세), 1억7000만원(양도소득세) 상당의 세금을 내라는 납세고지서였다.

과세 대상은 2016년 1월 부산시청에 기부한 이 회장 아내 소유의 복지회관 건물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한 건물에 대해 국가가 2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요구한 것이다.

 

세금의 정체는 ‘부담부증여’였다.

부담부증여란 부채를 포함한 증여의 경우 부채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증여자에게 부과하는 제도다.

이 회장이 지난 2016년 기부한 건물에는 그가 복지회관 운영자금으로 빌려온 13억7000만원의 부채가 포함돼있었다.

국세청은 13억7000만원의 부채에 대해서 부담부증여 명분으로 양도소득세와 지방소득세를 부과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지회관 건물은 현재 경매에 나와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7년 8월 이 회장은 복지회관 1층부터 3층에 노인 유치원, 장애인 유치원 등을 짓기 위해 세입자를 모두 뺐다.

그런데 유치원 건설을 위해 넣어둔 대출 신청이 반려되면서 이제껏 임대료 수익으로 상환해온 부채 이자가 연체되기 시작했다. 이에 채권자였던 부산은행이 법원에 경매신청을 한 것이다.

지난 15일 직접 방문한 두리하나 복지회관에선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1층에 자리한 두리하나 재활스포츠센터에는 팔과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들도 근육운동을 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다양한 기구들이 15개 남짓 놓여있었다.

강병철(60) 두리하나 재활스포츠센터 팀장은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그만큼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해 몸이 굳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곳에서 운동을 가르치고 함께 몸을 움직이며 후천적 장애로 인한 우울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활센터에서 나와 복도를 지나면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한 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사이로 전동 휠체어를 탄 남성이 그림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었다.

손영일(59) 두리하나 그림공방 방장이었다.

손 방장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장애인, 노약자 분들도 여기 와서 내게 그림을 배운다”며 “보통 장애인들이 배우는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두리하나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이용 가능한 카고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3층에선 휠체어를 탄 남성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함께 탁구를 치던 여성은 두 다리로 서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셨어” 휠체어를 탄 남성이 손짓으로 여성의 자세를 교정해줬다.

김만철(60) 두리하나 탁구클럽 코치다.

김 코치는 “나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삶에 큰 희망을 줬다”며 “두리하나가 나를 구해준 셈”이라 말했다.

지난 15일 부산 두리하나 복지회관에서 장애인 헬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최정석 기자

이밖에도 두리하나는 지난 20년간 무료급식 사업을 진행해왔다.

또 인근에 위치한 선안요양병원에 월마다 방문해 위문공연을 개최하거나, 부산역 노숙자들의 간식과 옷을 주기적으로 챙기는 등 복지회관 밖에서도 활동을 이어왔다.

6층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봉사에 전념한 계기로 ‘어머니’를 꼽았다.

 

이씨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숙식하는 노동자들의 밥과 빨래를 하루도 빠짐 없이 손수 챙기시던 분”이라며 “그 사랑과 헌신에 감화돼 ‘어머니같은 삶을 살자’고 결심한 게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건물 기부를 통해 봉사 정신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떨어진 세금 폭탄에 오히려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개인 소유 건물에서 봉사활동 하는 걸 더러 사기꾼 취급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봉사를 향한 내 의지가 순수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건물을 기증한 것”이라며 “국가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앞으로 누가 자기 소유 건물을 기증하려 들겠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건물을 기부할 때 부산시청에서도 부담부증여라는 제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전 재산에 가까운 건물을 기부한 상황에서 세금을 낼 2억원을 마련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무서는 법이 이렇기 때문에 돈을 내라는 말만 반복한다.

지금으로서는 재산이 없기 때문에 세금을 못 내고 신용불량자로 지내다 결손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한 건 후회하지 않지만,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서 사라지면 복지회관에서 기쁨과 희망을 찾던 사람들이 실의에 빠질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두리하나 복지회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는 “모든 상황이 자기 탓이라며 슬퍼하는 이 회장님을 볼 때마다 너무도 안타깝다”며 “현재 200여명의 장애인, 노인 등이 이곳을 오고가는데 복지회관이 사라지면 그들의 삶의 터전도 없어지는 것”이라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세 회피 목적 없이 선의로 이뤄지는 공익기부 행위에 세금을 물리는 건 기부 자체를 막는 잘못된 행태라고 지적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금전적 이득을 위한 거래 행위가 아닌 기부 행위에도 건물 부채에 세금을 부과하는 건 잠재적 기부자들의 기부 의사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행위”라며 “기부행위의 경우, 건물 가격과 부채의 차이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 부담부증여를 면제해주는 등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1/09/18/E7DD6PLGZZGA3GQDXVV5B2NM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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