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뜯으려 했지만, 수압에.." 반지하에서 숨진 가족
2022.08.08일 밤부터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지역에서 5명이 사망하고,4명이 실종된 가운데(9일 오전 10시기준)
서울 관악구 신사동에선 한 빌라 반지하에 거주하던 40대 자매와 10대 여아 한명이 수마를 피하지 못해 숨졌다.
9일 아침 <한겨레>가 이들이 숨진 빌라를 찾아가보니 빌라 주변은 온통 흙탕물투성이였다.
반지하에 사는 주민들은 물론 1층 주민, 가게 주인들까지 나와 양수기로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라고 한숨을 쉬었다. 하수도 냄새가 코를 찔렀다.
8일 밤 이 빌라에서 언니 ㄱ(47)씨와 동생 ㄴ(46)씨 그리고 ㄴ씨의 딸(13)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들은 밤 9시께부터 이 일대에 갑자기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ㄱ씨는 평소 말이 어눌한데 (어떤 유형인지 모르나)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ㄱ씨는 지적장애인으로 주민센터에 등록돼 있었다.
해당 빌라에선 이들과 어머니 ㄷ(73)씨가 함께 살았으나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탓에 수마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당 빌라 주민(73)은 “어젯밤 9시께부터 이미 빌라 앞 도로에는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있었다”며 “저와 동갑인 ㄷ씨는 이전부터 병원에 입원해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들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당황해 집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구조하려 다른 주민과 함께 창문을 뜯으려 했던 옆집 주민 전예성(52)씨는 당시 긴급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이웃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쳤다.
밖에 있던 전씨는 딸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가 밤 9시께부터 자신의 집 창문을 깨 20대 딸 3명을 구출하고, 이웃 주민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
전씨는 “(직장에)출근하던 중 밤 9시 우리 집 21살 딸이 ‘아빠, 창문에서 빗물이 쏟아진다’라고 전화해 급히 차를 돌려 집에 오니 이미 물이 집 창문까지 차있었다. 황급히 창문을 뜯어 딸 3명을 창문으로 구출해냈다”면서 “딸들을 구출하고 옆집에도 사람이 갇혀있다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2층 주민인 30대 남성과 옆집 창문을 뜯으려 했지만, 이미 물이 차올라 수압 탓에 힘으로 뜯을 수가 없었다. 한명만 더 있었어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물이 이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https://news.v.daum.net/v/7pCKqEGMyY
"엄마 문 안열려" 이게 마지막이었다…신림 반지하 비극
“할미 병원에서 산책이라두 하시면서 밥도 드시고 건강 챙기시구요.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계세요!”
초등학교 6학년인 이씨의 손녀가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한 이씨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지난 8일 오후 기록적 폭우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참변을 당한 A양(13)이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다.
할머니 이모(72)씨는 그날 오전 조직검사를 위해 한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통에 변을 면했지만, 이씨를 병원에 바래다 주고 돌아온
이씨의 큰딸 B씨(48), 작은딸 C씨(47)와 손녀 A양은 갑자기 집안에 들이닥친 물살을 피하지 못했다.
외국계 의류 유통업체 노조 전임자로 일하던 C씨가 생계를 책임지며 다운증후군이 있는 언니 B씨까지 돌보며 살던 가족이었다.
이씨는 “둘째 아이가 내 병원 일정에 맞춰 하필 이날 휴가를 냈다”며
“병원에 입원하지만 않았어도 얘는 (회사에 있어) 살았을 텐데 난 엄마도 아니다”라고 자책했다.
작은딸 8시 53분까지 지인과 통화
전날 내린 호우에 침수돼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빌라 지하가 9일 물에 잠겨 있다.
이씨가 들은 작은딸 C씨의 마지막 목소리는 밤 8시 37분 걸려온 전화 넘어로 전달된
“엄마 물살에 (열려있던) 현관문이 닫혀버렸는데 수압 때문에 안 열려”라는 말과 울먹임이었다.
C씨는 8시 43분과 8시 53분 친한 언니 김모씨에게 “119가 아예 안 받는다”며 도움을 청했다.
같은 시간대 119는 500건 이상의 신고 접수가 몰리며 먹통이었다.
마지막 통화에서 김씨가 “나도 여기서 (119에) 전화할 테니 너도 계속해라”라고 말하는 사이
통화음은 지지직 거리기 시작했고 “언니니니” 하는 C씨의 목소리를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이후 김씨는 “119에 주소 남겼으니 기다리라”고 문자를 남겼지만 읽지 못했다는 의미의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 뒤론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빌라 앞 싱크홀. 인근 도로에는 콘크리트가 꺼지거나 융기하며 4~5개 웅덩이가 생겼다.
거센 물살이 지상과 지하에서 동시에 흐르며 도로가 무너진 탓이다.
생존 母 “한 달 전 예쁘게 꾸민 집” “거짓말 같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수해로 사망한 C씨가 한 달 전 새 침대와 책상을 들이며
꾸며 놓은 언니(왼)와 딸(오)의 방. [사진 이씨]
하루아침에 두 딸과 손녀를 잃은 이씨는 오열과 오열 사이에 “모든 게 거짓말 같다”고 .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았어도 화목한 가족이었다.
이씨는 “둘째 딸은 장애 있는 언니를 매일 목욕시키면서도 짜증 한번 안 냈다”며
“쉬는 날이면 언니와 딸을 데리고 소풍을 다녀오는 착한 딸이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기 한 달 전 C씨는 딸과 언니의 방을 새로 꾸며줬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딸에게 책상을 새로 장만해주면서 언니 방에도 침대를 새로 들인 것이다.
이씨는 핸드폰을 꺼내 단정히 정리된 방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였다.
이씨는 “방 예쁘게 꾸며놨다고 이렇게 사진도 찍어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7년 전 이사, 4가족 오순도순 살던 반지하
이씨 가족은 7년 전 이 반지하집을 보금자리로 택했다.
이씨는 “사용한 비닐봉지까지 씻어 다시 써가며 모은 돈으로 처음 장만한 집이었다”고 말했다.
도림천 근처는 저지대라 수해에 취약한 지역이었지만 이들에게 ‘반지하’는
위험이 아니라 적은 돈으로 방 세 칸을 마련할 기회로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큰딸이 다닐 수 있는 복지관이 가까웠다.
B씨는 “이사올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고 말했다.
기록적 폭우가 쏟아놓은 빗물은 도로를 타고 지대가 낮은 빌라의 주차장으로
밀려들어 곧바로 이 집 출입구를 틀어막은 채 집 안으로 넘쳐들었다.
병상에서 온종일 통곡한 이씨는 “내 형편에 남한테 크게 베풀고 살진 못했어도 빚지거나 폐 끼치고 살진 않았다.
우리 가족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느냐”며 또 울었다.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빌라 맞은편 수해 현장.
주민들이 밤새 물에 젖은 침구들과 가구를 밖에 꺼내놓았다.
반복되는 반지하 침수…“주거환경 개선 절실”
도림천 주변 반지하 가구들은 여름이면 늘 침수 위험에 노출돼 왔다.
2001년 7월엔 장대비에 도림천의 지천이 범람해 침수로 6명이 사망하고 떠내려온 차량이
가스통을 들이받아 발생한 화재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도 피해자 대부분이 반지하 거주자였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이씨 가족이 참변을 당한 관악구 신림4동은 가구 중 22% 가량이 반지하 주택에 산다.
‘한국 (반)지하 주거의 사회적 표상과 거주자의 정체성 연구’라는 논문을 썼던
사회학 연구자 장진범씨는 “수해가 나면 반지하 주택을 없애야 한다는 식의 정책이
나오곤 한다”며 “그렇다고 무작정 없애면 이들은 쪽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장씨는 “우선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반지하 가구에 대한 전수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2020년 6월 발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하·
반지하·옥탑방 거주 가구는 26만5000가구로 전체의 1.3%다. 같은 해 영화 ‘기생충’이
국제 영화제를 휩쓸자 국토교통부는 반지하 가구의 주거환경에 대한 전수 실태 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방문 조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산됐다.
https://news.nate.com/view/20220810n01502
서울시가 10일 “앞으로 서울에서 지하·반지하는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반지하를 주거용으로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고
△건축허가 시에도 불허하도록 각 자치구에 ‘허가 원칙’을 전달하며
△기존 건축물은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주거용으로 쓰지 않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하·반지하는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에는 건물주가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도록 인센티브 등을 통해 유도하겠다는 것이 시의 계획이다.
시는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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