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의 선물… 음식물 쓰레기가 유기질 비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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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이야기

구더기의 선물… 음식물 쓰레기가 유기질 비료로

by K 61417 2020. 3. 19.

천혜의 휴양지 롬복 섬에 득시글대는 구더기 떼를 만나러 갔다.

 
 

구더기 농장은 행정구역상 인도네시아 서부누사텡가라주(州) 롬복의 링사르 지역에 있다.

롬복은 저 유명한 발리의 오른쪽에 붙은 섬이다.

지난해 8월 발생한 지진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다.

당시 개소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구더기 농장은 100명이 넘는 이재민의 피난처로 쓰였다.

구더기를 먹고 살던 농장의 닭들은 구호 식량으로 생을 마감하고 사람을 살렸다.

농장을 만들어 기증하고 후원한 한인 기업의 배려 덕이다.

 

올 들어 다시 가동한 농장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 및 분리 구역

△바이오리액터(bioreactor)

△부화장

△사육장

△건식 비료와 액상 비료 생산 공간

△양계장으로 이뤄져 있다.

지방 정부가 원래 소 키우던 축사를 20년 무상 임대로 내줘 기존 구조물을 최대한 활용했다.

바이오리액터는 생물을 이용해 발효, 분해, 합성, 변환 등을 하는 생물반응장치를 가리킨다.

 

음식물 쓰레기를 담은 파란색 상자들은 예상대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병원 4곳과 음식물 쓰레기 수거 캠페인을 하고 있는 시장에서 온 것들이다.

하루 300~500㎏ 분량이다. 더 많은 양을 확보하기 위해 섬에 널린 호텔들과 협의 중이다.

매립되거나 아무 데나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농장에겐 보배다.

인도네시아는 분리수거 개념 자체가 희박한 터라 음식물에 섞인 비닐 같은 다른 쓰레기를 일일이 골라내야 한다.

이 작업에만 6명이 매달린다.

롬복 지방 정부는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조례를 석 달 전 중앙 정부에 올리고 내무부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농장 직원 우마미(34)씨는 “조례가 통과되면 아마 첫 사례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축사를 개조한 바이오리액터는 음식물 쓰레기와 구더기가 뒤섞인 장소다.

시각과 후각이 긴장해 들어서기 꺼려졌다.

그런데 시큼한 냄새만 풍길 뿐 음식물 썩는 악취가 나지 않았다.

부패가 아니라 발효라 그렇단다.

미관상 거부감도 후각이 안심하자 수그러들었다.

흰색에서 초콜릿색으로 변한 늙은 구더기는 편견에 물들지 않아서인지 만져볼 용기가 날 정도다. 부드럽다.

바이오리액터는 48개가 설치돼 있지만 쓰레기양이 적어 현재는 6개만 가동 중이다.

그래서 아직 수익을 담보하긴 어려운 상태다.

구더기로 살아가는 13일간, 3㎡ 면적의 리액터 한 곳은 30㎏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

구더기 한 마리당 매일 음식물 2~3g을 분해할 수 있다고 한다. 풀(full)가동할 경우 월 매출 200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약 13명치 월급이다.

 

일단 구더기들이 처리한 음식물 쓰레기는 버릴 게 없다.

분해 및 발효돼 부피가 절반으로 줄어든 음식물 쓰레기는 햇볕에 말린 뒤 기계로 갈아주면 유기질 비료로 쓸 수 있다.

발효 과정에서 구더기 배설물과 섞여 흘러나온 액체는 기다란 관을 타고 통에 저장된 후 고품질 액상 비료로 사용된다.

 

롬복 주민 알버트(31)씨는 “구더기 액상 비료를 뿌린 뒤부터 고구마가 더 빨리 자란다”고 했다.

오이에 구더기 액상 비료를 썼더니 병충해에 강해졌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자연 친화적인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법이자 작물의 생장을 돕는 덤까지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약 2주간 제 할 일을 다하고 살이 통통 오른 구더기는 닭 오리 물고기에게 고단백 별미로 주어진다.

구더기 농장 근처에는 시범 양어장이 있다. 구더기 15~20㎏이 매일 양어장에 제공된다.

화학사료는 하루에 두 번 줘야 하지만 단백질 함량이 그 두 배인 구더기는 한 번이면 족하다.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고 화학 성분도 들어있지 않으니, 비용은 절반으로 줄이면서 유기 농법으로 물고기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양어장 수익은 구더기 농장이 6, 양어장이 4를 가져간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무항생제 유기농’ 물고기는 보통 물고기보다 빨리 자라 두 달 뒤 첫 출하를 앞두고 있다.

 

농장 뒤편에 자리한 부화장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요람이자 무덤’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성충들이 온몸에 달라붙을 만큼 많다. 성충은 7일간 살며 알을 낳고 죽음을 맞이한다.

부화용 합판엔 노란 알들이 새싹처럼 움트고 바닥엔 검은 성충의 사체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롬복의 구더기들은 10㎜의 작디작은 몸으로 사람에게 세 번 헌신한다.

인간들이 남겼으면서도 더럽다 취급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환경친화적으로 정화한다.

처리된 쓰레기는 다시 사람을 먹일 농작물을 키울 무공해 비료로 탈바꿈한다.

제 몸은 닭과 오리, 물고기에게 던져져 인간들을 살찌운다. 한마디로 1석 3조다.

 

농장 관리자 인드라(38)씨는 “더 많은 음식물 쓰레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고, 비료 포장술을 도입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사람이 할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이쯤 해서 통칭 애벌레(유충)가 구더기로 불리는 녀석의 진짜(성충) 이름을 밝힌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해충 똥파리가 아닌 익충(益蟲) ‘동애등에’다.

영어 이름은 블랙솔저플라이(Black Soldier FlyㆍBSF), 검은병정파리쯤 된다.

‘구더기 무서워서~’ ‘구더기 될 놈’ 같은 우리네 속담이나 관용구는 적어도 롬복에선 결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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